일제강점기, 어린 아이의 눈으로 본 생생한 체험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어떻게 해서라도 월사금을 구해 배우고자 하는 아이의 처절한 노력을 통해 과거 우리 엄마, 아빠, 또 할아버지, 할머니가 어떻게 살아 오셨는지 살짝 엿볼 수 있다.
일본의 앞잡이를 해서라도 남들보다 잘살아보겠다는 친일파와 일본의 식민 지배아래 가장 암울했던 시대를 살아가는 민초들의 이중고에 노출된, 고난의 아이콘 주인공 명수.
우리의 어두웠던 과거를 기억하고,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이 되는 2019년.
자주 민주국가, 대한민국에서 오늘을 새롭게 새로운 희망으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작은 힘이 되길 기대한다.
* 이야기를 이해하는 작은 Tip
: 이 이야기에 끝에 나오는 ‘호감자’는 우리가 아는 감자가 아니다.
평안도와 황해도에서는 ‘고구마’를 ‘호감자’라 불렀다 한다.
강경애 (1906~1944)
일제강점기 어려운 경제여건과 질병 속에서도 이에 굴하지 않고 식민지 한국 사회의 궁핍한 생활상을 담담하게 작품으로 담아 낸 여류작가.
단편소설 [파금(破琴)]으로 1931년 문단에 등단했고, 장편소설 [어머니와 딸]로 작가로 인정받았다.
특히 [인간 문제]와 [지하촌]은 문제작으로 새롭게 주목 받게 되었고 [젊은 어머니], [소금], [산남] 등 다수의 작품을 남겼다.
‘강가마’라는 필명으로 1924년 잡지 <금성>에 작품을 발표하고 그 해 9월 고향에서 흥풍야학교를 열어 학생과 농민을 가르치기도 했다.
신간회와 여성 단체인 근우회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가했다.
장하일과 1931년 결혼하고 간도로 이주하여 작품 활동을 계속했다.
<조선일보> 간도지국장을 역임하기도 했으나 건강 악화로 1942년 남편과 고국으로 귀국해 요양 중 작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