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서 집을 못 구해 삼팔선 넘어 이북으로 가려는 모자!
만주에서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그 유골을 가지고 배로 인천에 도착한 모자.
고향인 이북으로 가려 했으나 삼팔선이 생기고, 그리로 가려면 목숨을 걸아야 합니다.
그래서 서울에 단칸초막에 들어가 겨울을 나려 하는데...
너무 춥고 먹을 것도 없습니다.
아들은 집을 구하러 다니지만 세 얻을 돈도 없지만 구할 수 있는 집도 없습니다.
만주에서 오는 배에서 만난 사람과 친구가 되어 그 사람이 완력으로 집을 구하게 해주겠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런 방법으로 집을 얻고 싶지는 않습니다.
이 모자는 서울에서 집을 얻을 수 있을까요?
아니면 아버지의 유골을 들고 삼팔선을 넘어야 할까요?
추운 겨울, 배곯고 힘든 모자의 삶으로 들어가 봐야겠습니다.
계용묵 (1904 ~ 1961)
소설가.
본명은 하태용(河泰鏞)으로 평북 선천에서 태어나 삼봉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휘문고보를 거쳐 1928년 일본에 건너가 토요대(東洋大學) 동양학과에 다녔다.
데뷔는 1920년 소년지 『새소리』에 시 [글방이 깨어져]로 했고, 1925년『생장』에 시 [부처님, 검님 봄이 왔네]가 현상문예에 당선되었다.
본격적인 작품 활동은 1927년 『조선문단』에 소설 [최서방]이 당선되고 부터이고
1928년『조선지광』에 [인두지주(人頭蜘蛛)]를, 1935년『조선문단』에 [백치아다다]를 발표하였다.
1938년 『조선일보』 출판부에서 근무하였고, 1943년에는 일본 천황 불경죄로 2개월간 수감되었다.
광복 직후에 정비석과 함께 『조선』을 창간하였다.
1961년 『현대문학』에 [설수집(屑穗集)]을 연재하던 중 사망하였다.
계용묵은 [최서방], [인두지주] 등에서 현실주의적‧경향파적인 작품세계를 보였지만 [백치아다다] 발표를 통해 인생파적‧예술파적 작품세계로 옮아간 후, 예술의 미적 창조 및 자율성을 강조하는 예술지상주의적 작품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