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조선에서 일본유학한 철학자가 한 선택!
흥 선생은 일본에서 7년간 힘들게 학비를 벌면서 철학을 공부한 식자입니다.
플라톤은 국가는 제일의(第一義)의 국민을 양육할 의무가 있다고 했습니다.
이 사상에 동의하는 그였지만 조선이라는 나라에서 살아가는 것은 그리 녹녹치가 않습니다.
고생 속에 7년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소학교에서 선생님을 하고 있었는데 그 학교가 총무부 지정 학교가 되는 바람에 쫓겨 나왔습니다.
교원 면허증이 없으면 아이들을 가르칠 수 없다고 합니다.
이제 면허증을 따기는 힘들고...
그래서 흥 선생은 자신의 생계를 위해 고민하기 시작합니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모든 직업에 면허증과 허가증, 인가증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과연 철학자 흥 선생은 자신의 생계를 위해 어떤 일을 선택했을까요?
그 과정에서 동업자를 만나고 눈보라를 만나게 되는데...
흥 선생이 겪는 삶 속으로 들어가 봐야겠습니다.
* 이 작품은 1929년 9월 21일부터 10월 1일까지, <동아일보>에 「동업자」란 이름으로 발표되었다가, 1946년 [태형]에서「눈보라」로 제목을 고쳐 수록되었습니다.
김동인 (1900 ~ 1951)
일제강점기의 소설가.
평양에서 태어나 평양숭덕소학교와 숭실중학교를 거쳐 일본의 도쿄 학원, 메이지 학원, 가와바타 미술학교에서 공부하고, 1919년 전영택, 주요한 등과 우리나라 최초의 문예지 [창조]를 발간하였다.
[약한 자의 슬픔]을 시작으로, 간결하고 현대적인 문체로 [목숨] [배따라기] [감자] [광염 소나타] [발가락이 닮았다] [광화사] 등의 단편소설을 선보였다. 1924년 첫 창작집 [목숨]을 출판하였고, 1930년 장편소설 [젊은 그들]을 <동아일보>에 연재하였다.
1933년 <조선일보>에 [운현궁의 봄]을 연재하고 1935년 월간지 [야담]을 발간하였으며 1944년 친일소설 [성암의 길]을 발표한 후 1951년 6·25 전쟁 중에 숙환으로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