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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애 부자

감동의 한국문학단편시리즈 098

힘이 장사였던 아버지가 겪은 일을 회상하는 아들의 선택! 바위는 어머니와 삽니다. 아버지는 힘이 장사라 이름이 ‘장사’로 불리웠습니다. 바위는 어렸을 때 아버지를 잃었습니다. 그렇게 따르고 사랑해주셨던 아버지를... 지금은 야학을 공부하며 농장 일을 하고 있었는데, 야학에 다니는 것을 금하던 농장감독에게 찍혀 농장을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바위의 아버지는 사랑하는 가족을 남겨두고 어디로 간 것일까요? 바위는 아버지를 생각하며 지금 무슨 일을 하고자 하는 걸까요? 없는 자들이 있는 자에게 착취당하고 삶의 주체로서 살 수 없는 시대의 이야기! 예전과 지금은 얼마나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을지 한번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힘이 장사였던 아버지가 겪은 일을 회상하는 아들의 선택!

바위는 어머니와 삽니다.
아버지는 힘이 장사라 이름이 ‘장사’로 불리웠습니다.

바위는 어렸을 때 아버지를 잃었습니다.
그렇게 따르고 사랑해주셨던 아버지를...

지금은 야학을 공부하며 농장 일을 하고 있었는데, 야학에 다니는 것을 금하던 농장감독에게 찍혀 농장을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바위의 아버지는 사랑하는 가족을 남겨두고 어디로 간 것일까요?
바위는 아버지를 생각하며 지금 무슨 일을 하고자 하는 걸까요?

없는 자들이 있는 자에게 착취당하고 삶의 주체로서 살 수 없는 시대의 이야기!
예전과 지금은 얼마나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을지 한번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강경애 (1906~1944)
일제강점기 어려운 경제여건과 질병 속에서도 이에 굴하지 않고 식민지 한국 사회의 궁핍한 생활상을 담담하게 작품으로 담아 낸 여류작가.

단편소설 [파금(破琴)]으로 1931년 문단에 등단했고, 장편소설 [어머니와 딸]로 작가로 인정받았다. 특히 [인간 문제]와 [지하촌]은 문제작으로 새롭게 주목 받게 되었고 [젊은 어머니], [소금], [산남] 등 다수의 작품을 남겼다.

‘강가마’라는 필명으로 1924년 잡지 <금성>에 작품을 발표하고 그 해 9월 고향에서 흥풍야학교를 열어 학생과 농민을 가르치기도 했다.
신간회와 여성 단체인 근우회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가했다.
장하일과 1931년 결혼하고 간도로 이주하여 작품 활동을 계속했다.
<조선일보> 간도지국장을 역임하기도 했으나 건강 악화로 1942년 남편과 고국으로 귀국해 요양 중 작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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