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평양공장에서 들은 ‘미증유 중대 방송’의 여파!
오늘 정오에 ‘미증유 중대 방송’이 있다고 합니다.
평양공장의 모든 일본인과 유일한 조선인인 손숙희 급사는 함께 방송을 들었습니다.
그 방송은 손숙희가 예기한대로 일본 황제의 무조건 항복이었습니다.
그 날로 1억 일본인에서 다시 조선인으로의 신분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치안 유지법 위반’이라는 죄명 아래 경성 서대문 형무소에 갇혀있는 남편이 있습니다.
그는 태어난 아들조차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바로 아들과 함께 기차를 타고 서울로 갑니다.
옥에서 석방되는 남편을 만나고 아들과 처음 만나게 해주려고....
네 살 난 아들은 아버지를 보면 “대한독립만세!”를 외치겠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거리에 쏟아져 나오고, 일본인들은 챙길 것을 챙겨 도망가기 바쁘고...
과연 이 가족은 서로 만날 수 있을까요?
그들의 미래는 어떻게 바뀔까요?
김동인 (1900 ~ 1951)
일제강점기의 소설가.
평양에서 태어나 평양숭덕소학교와 숭실중학교를 거쳐 일본의 도쿄 학원, 메이지 학원, 가와바타 미술학교에서 공부하고, 1919년 전영택, 주요한 등과 우리나라 최초의 문예지 [창조]를 발간하였다.
[약한 자의 슬픔]을 시작으로, 간결하고 현대적인 문체로 [목숨] [배따라기] [감자] [광염 소나타] [발가락이 닮았다] [광화사] 등의 단편소설을 선보였다. 1924년 첫 창작집 [목숨]을 출판하였고, 1930년 장편소설 [젊은 그들]을 <동아일보>에 연재하였다.
1933년 <조선일보>에 [운현궁의 봄]을 연재하고 1935년 월간지 [야담]을 발간하였으며 1944년 친일소설 [성암의 길]을 발표한 후 1951년 6·25 전쟁 중에 숙환으로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