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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백남 순정의 호동왕자

감동의 한국문학단편시리즈 207

낙랑공주를 잃은 호동왕자의 가슴 아픈 사랑! 낙랑공주가 국보인 나발과 북을 깨뜨려 버려 낙랑국을 고구려에 빼앗겼습니다. 그래서 낙랑왕 최리의 노염을 사서 그녀는 참사를 당했습니다. 호동왕자는 죽은 낙랑공주를 잊지 못해 애마를 타고 그녀의 무덤으로 달려갑니다. 호동왕자는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계속 눈물만 흘립니다. 이런 호동왕자를 사랑한 국왕은 그에게 태자의 자리를 주려고 하는데... 과연 호동왕자는 고구려의 왕이 될 수 있을까요? 호동왕자가 진정으로 사랑한 낙랑공주를 위해 어떤 선택을 하는지...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봐야겠습니다.
낙랑공주를 잃은 호동왕자의 가슴 아픈 사랑!

낙랑공주가 국보인 나발과 북을 깨뜨려 버려 낙랑국을 고구려에 빼앗겼습니다.
그래서 낙랑왕 최리의 노염을 사서 그녀는 참사를 당했습니다.

호동왕자는 죽은 낙랑공주를 잊지 못해 애마를 타고 그녀의 무덤으로 달려갑니다.

호동왕자는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계속 눈물만 흘립니다.
이런 호동왕자를 사랑한 국왕은 그에게 태자의 자리를 주려고 하는데...
과연 호동왕자는 고구려의 왕이 될 수 있을까요?

호동왕자가 진정으로 사랑한 낙랑공주를 위해 어떤 선택을 하는지...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봐야겠습니다.
윤백남 (1888 ~ 1954)
소설가, 극작가 겸 연극영화인

충청남도 공주에서 1888년(고종 25) 태어난 윤백남의 본명은 교중(敎重)입니다.
1904년 일본으로 가 1910년 동경고등상업학교를 졸업하고, 1911년 보성전문 강사로 일했습니다.

1912년 극단 문수성(文秀星)을 조직하여 제1회 공연을 원각사(圓覺社)에서 가졌고, 1913년 《매일신보》 편집국장을 지냈습니다.
1916년 반도문예사(半島文藝社)를 설립하여 월간지 《예원(藝苑)》을 창간하였고, 극단 예성좌(藝星座)를 조직하여 초연을 단성사(團成社)에서 가졌습니다. 또한, 1917년 백남(白南)프로덕션을 창립하여 여러 편의 영화를 감독·제작했습니다.
1919년 한국 최초의 대중소설 [대도전(大盜傳)]을 발표했으며 민중극단을 조직하여 신극운동을 전개했습니다.

1922년 민중극단(民衆劇團)을 조직해 자신의 희곡 [등대지기][기연(奇緣)] [제야의 종소리] 등과 번안·번역극 등을 상연했고, 1923년 한국 최초의 극영화인 [월하(月下)의 맹서]의 각본과 감독을 맡았습니다.

대표작품은 [항우(項羽)] [난아일대기(蘭兒一代記)] [봉화(烽火)] [흑두건(黑頭巾)] [해조곡(海鳥曲)] [백련유전기(白蓮流轉記)] [미수(眉愁)] [낙조(落照)의 노래] [야화(野花)] [조선형정사(朝鮮刑政史)]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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