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시절, 함께 공부하던 세 친구의 각기 다른 삶과 선택!
서울 사는 손생원은 빈궁한 삶을 견디다 못해 예전 친구를 찾아 함흥으로 가고 있습니다.
노자 돈이 없어서 과객질을 하면서 형편이 괜찮은 집에 가서 잠자리와 식사를 해결하며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 곳에서 형편 좋은 홍영감이 과객들을 아주 푸대접하는 경우를 당하였습니다.
그곳에서 어떤 사람을 만나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과거에 함께 동문수학하던 친구, 함흥감사를 찾아 간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때 함께 공부하던 한 친구, 양생에 대해서도 이야기하는데 그는 어디에 있는지 소식을 모른다고 했습니다.
다음 날, 손생원을 찾아 온 사람들이 있었으니...
그들은 과연 누구일까요?
손생원에게는 어떤 일들이 펼쳐질까요?
청년시절, 동문수학하던 세 친구의 소원과 현재의 삶, 그리고 그들의 또 다른 선택을 만나봐야겠습니다.
* 경벌포의(警罰布衣)는 ‘죄를 깨달은 벼슬 없는 선비’라는 의미입니다.
윤백남 (1888 ~ 1954)
소설가, 극작가 겸 연극영화인
충청남도 공주에서 1888년(고종 25) 태어난 윤백남의 본명은 교중(敎重)입니다.
1904년 일본으로 가 1910년 동경고등상업학교를 졸업하고, 1911년 보성전문 강사로 일했습니다.
1912년 극단 문수성(文秀星)을 조직하여 제1회 공연을 원각사(圓覺社)에서 가졌고, 1913년 《매일신보》 편집국장을 지냈습니다.
1916년 반도문예사(半島文藝社)를 설립하여 월간지 《예원(藝苑)》을 창간하였고, 극단 예성좌(藝星座)를 조직하여 초연을 단성사(團成社)에서 가졌습니다. 또한, 1917년 백남(白南)프로덕션을 창립하여 여러 편의 영화를 감독·제작했습니다.
1919년 한국 최초의 대중소설 [대도전(大盜傳)]을 발표했으며 민중극단을 조직하여 신극운동을 전개했습니다.
1922년 민중극단(民衆劇團)을 조직해 자신의 희곡 [등대지기][기연(奇緣)] [제야의 종소리] 등과 번안·번역극 등을 상연했고, 1923년 한국 최초의 극영화인 [월하(月下)의 맹서]의 각본과 감독을 맡았습니다.
대표작품은 [항우(項羽)] [난아일대기(蘭兒一代記)] [봉화(烽火)] [흑두건(黑頭巾)] [해조곡(海鳥曲)] [백련유전기(白蓮流轉記)] [미수(眉愁)] [낙조(落照)의 노래] [야화(野花)] [조선형정사(朝鮮刑政史)]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