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살 아이가 온종일 돌을 저 나른 이유와 그 결과!
만금이는 열 살 아이입니다.
야학에 월사금도 못 내고 지난 여름, 물난리로 아버지와 누이를 잃고 어머니와 둘이 끼니도 못 챙기며 어렵게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담임선생님께서 전재고아들을 위해 성금을 한다고 50환씩을 가져오라고 하셨는데 만금이는 자기처럼 어려운 아이들을 돕기 위해 꼭 50환을 벌고자 마음먹었습니다.
그러던 중, 윤초시네가 집을 짓기 위해 자갈을 산다고 해서 만금이는 하루 종일 자갈을 저 나르며그 성금을 벌고자 열심히 일했습니다.
과연 만금이는 열심히 일해서 성금을 선생님께 가져다 드릴 수 있을까요?
이제 만금이를 만나봐야겠습니다.
* 이 작품은 1936년 [조선농민]에 발표되었고, 1976년 [신한국문학전집]에 수록되었습니다.
계용묵 (1904 ~ 1961)
소설가.
본명은 하태용(河泰鏞)으로 평북 선천에서 태어나 삼봉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휘문고보를 거쳐 1928년 일본에 건너가 토요대(東洋大學) 동양학과에 다녔다.
데뷔는 1920년 소년지 『새소리』에 시 [글방이 깨어져]로 했고, 1925년『생장』에 시 [부처님, 검님 봄이 왔네]가 현상문예에 당선되었다.
본격적인 작품 활동은 1927년 『조선문단』에 소설 [최서방]이 당선되고 부터이고, 1928년『조선지광』에 [인두지주(人頭蜘蛛)]를, 1935년『조선문단』에 [백치아다다]를 발표하였다.
1938년 『조선일보』 출판부에서 근무하였고, 1943년에는 일본 천황 불경죄로 2개월간 수감되었다.
광복 직후에 정비석과 함께 『조선』을 창간하였다.
1961년 『현대문학』에 [설수집(屑穗集)]을 연재하던 중 사망하였다.
계용묵은 [최서방], [인두지주] 등에서 현실주의적‧경향파적인 작품세계를 보였지만 [백치아다다] 발표를 통해 인생파적‧예술파적 작품세계로 옮아간 후, 예술의 미적 창조 및 자율성을 강조하는 예술지상주의적 작품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