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믿고 찾는 사람을 그리워하는 남자 이야기!
성눌은 몸이 몹시 아팠지만 시골계신 부모님께는 알리지 않았습니다.
그가 공부하려고 경성에 갔을 때 없는 살림에 뒷바라지 해주신 부모님께 더 이상 손을 벌릴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친구들이 과일과 과자를 사 들고 찾아옵니다.
그리고 그들은 약만 먹는다고 병이 낫는 것이 아니니 전지 요양을 하라고 권합니다.
하지만 그럴 돈이 성눌에게는 없습니다.
성눌은 이런 친구들이 원망스럽습니다.
이런 말 뿐이 아닌 병을 낫게 하는 실질적인 도움을 줄 친구는 없는 것인가…?
고독과 외로움 속에 그의 병은 점점 더 심해져 가고, 그러던 중 부모님이 성눌이의 병을 알게 되는데…
과연 성눌은 병이 나을 수 있을까요?
그가 그렇게 원하던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을 찾을 수 있을까요?
* 이 작품은 1939년 [조광]에 발표되었고, 1944년 [병풍에 그린 닭이]에 수록되었습니다.
계용묵 (1904 ~ 1961)
소설가.
본명은 하태용(河泰鏞)으로 평북 선천에서 태어나 삼봉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휘문고보를 거쳐 1928년 일본에 건너가 토요대(東洋大學) 동양학과에 다녔다.
데뷔는 1920년 소년지 『새소리』에 시 [글방이 깨어져]로 했고, 1925년『생장』에 시 [부처님, 검님 봄이 왔네]가 현상문예에 당선되었다.
본격적인 작품 활동은 1927년 『조선문단』에 소설 [최서방]이 당선되고 부터이고
1928년『조선지광』에 [인두지주(人頭蜘蛛)]를, 1935년『조선문단』에 [백치아다다]를 발표하였다.
1938년 『조선일보』 출판부에서 근무하였고, 1943년에는 일본 천황 불경죄로 2개월간 수감되었다.
광복 직후에 정비석과 함께 『조선』을 창간하였다.
1961년 『현대문학』에 [설수집(屑穗集)]을 연재하던 중 사망하였다.
계용묵은 [최서방], [인두지주] 등에서 현실주의적‧경향파적인 작품세계를 보였지만 [백치아다다] 발표를 통해 인생파적‧예술파적 작품세계로 옮아간 후, 예술의 미적 창조 및 자율성을 강조하는 예술지상주의적 작품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