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법대로 처벌한 아버지의 원수를 갚으려는 소년이야기!
때는 정조 기유 이월, 아직 부는 바람이 몹시 추운 이른 새벽.
군언 이주국이 무과총사로 처음 제장을 통솔하여 한강의 모래밭에 군기를 배열하고 습진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모두가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고 있었는데 한 사람이 낙오하여 있음에 몹시 모욕감을 느낀 주국.
그래서 빨리 대열에 합류하라고 소리쳤으나 그 병사는 이내 쓰러져버리는데….
군법에 충실한 주국은 그 병사에게 곤장 30대를 치라고 하고, 그 매를 다 맞고 죽어버린 병사…
병사의 아내와 총기 있는 아들이 찾아와 목놓아 우는데…
과연 이주국과 병사의 아들은 어떤 관계를 맺고 어떻게 살아가게 될까요?
이 두 사람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봐야겠습니다.
윤백남 (1888 ~ 1954)
소설가, 극작가 겸 연극영화인
충청남도 공주에서 1888년(고종 25) 태어난 윤백남의 본명은 교중(敎重)입니다.
1904년 일본으로 가 1910년 동경고등상업학교를 졸업하고, 1911년 보성전문 강사로 일했습니다.
1912년 극단 문수성(文秀星)을 조직하여 제1회 공연을 원각사(圓覺社)에서 가졌고, 1913년 《매일신보》 편집국장을 지냈습니다.
1916년 반도문예사(半島文藝社)를 설립하여 월간지 《예원(藝苑)》을 창간하였고, 극단 예성좌(藝星座)를 조직하여 초연을 단성사(團成社)에서 가졌습니다.
또한, 1917년 백남(白南)프로덕션을 창립하여 여러 편의 영화를 감독·제작했습니다.
1919년 한국 최초의 대중소설 [대도전(大盜傳)]을 발표했으며 민중극단을 조직하여 신극운동을 전개했습니다.
1922년 민중극단(民衆劇團)을 조직해 자신의 희곡 [등대지기][기연(奇緣)] [제야의 종소리] 등과 번안·번역극 등을 상연했고, 1923년 한국 최초의 극영화인 [월하(月下)의 맹서]의 각본과 감독을 맡았습니다.
대표작품은 [항우(項羽)] [난아일대기(蘭兒一代記)] [봉화(烽火)] [흑두건(黑頭巾)] [해조곡(海鳥曲)] [백련유전기(白蓮流轉記)] [미수(眉愁)] [낙조(落照)의 노래] [야화(野花)] [조선형정사(朝鮮刑政史)]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