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아기 낳지 못하는 여자가 겪은 처절한 일!
아직 코흘리개였던 꼬마신랑에서 시집온 새색시, 박씨.
어려운 집안살림에서도 온갖 굳은 일을 다해서 시집식구들 끼니를 거르지 않게 살아왔습니다.
이제 남편이 장성하였는데, 아직 아기를 낳지 못했습니다.
시어머니는 그런 며느리를 몹시 구박하고, 박씨는 남편을 설득해 첩을 얻어 아기를 낳도록 하는데…
과연 박씨에게는 어떤 삶이 기다리고 있을까요?
1930년대, 여자들이 겪어야 했던 처절한 삶의 모습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 이 작품은 1935년 [여성]에 발표되었고, 1944년 [병풍에 그린 닭이] 단행본으로 수록되었다.
계용묵 (1904 ~ 1961)
소설가.
본명은 하태용(河泰鏞)으로 평북 선천에서 태어나 삼봉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휘문고보를 거쳐 1928년 일본에 건너가 토요대(東洋大學) 동양학과에 다녔다.
데뷔는 1920년 소년지 『새소리』에 시 [글방이 깨어져]로 했고, 1925년『생장』에 시 [부처님, 검님 봄이 왔네]가 현상문예에 당선되었다.
본격적인 작품 활동은 1927년 『조선문단』에 소설 [최서방]이 당선되고 부터이고
1928년『조선지광』에 [인두지주(人頭蜘蛛)]를, 1935년『조선문단』에 [백치아다다]를 발표하였다.
1938년 『조선일보』 출판부에서 근무하였고, 1943년에는 일본 천황 불경죄로 2개월간 수감되었다.
광복 직후에 정비석과 함께 『조선』을 창간하였다.
1961년 『현대문학』에 [설수집(屑穗集)]을 연재하던 중 사망하였다.
계용묵은 [최서방], [인두지주] 등에서 현실주의적‧경향파적인 작품세계를 보였지만 [백치아다다] 발표를 통해 인생파적‧예술파적 작품세계로 옮아간 후, 예술의 미적 창조 및 자율성을 강조하는 예술지상주의적 작품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