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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백남 소설정획점고인

감동의 한국문학단편시리즈 332

평양에서 서울로 아버지를 따라간 후 정인을 못 잊는 외아들! 외아들 성세창은 평안감사로 있던 아버지를 따라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평양 감영에서 옥소선이란 명기를 만나 사랑에 빠졌던 그는, 아버지를 따라 가느라 정인을 평양에 두고 왔습니다. 음식도 잘 먹지 않고 글도 읽지 않고... 이런 아들을 보는 어머니는 걱정이 태산입니다. 아버지는 그를 망월암으로 보내는데... 성세찬은 망월암에서 몰래 옥소선을 보러 탈출합니다. 앞으로 성세찬에게는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요? 부모님은 외아들이 사라진 것을 알게 될까요? * 소설정획점고인(掃雪庭獲覘故人)은 ‘뜰에서 눈을 쓸며 마음이 멀어진 사람을 엿보아 얻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평양에서 서울로 아버지를 따라간 후 정인을 못 잊는 외아들!

외아들 성세창은 평안감사로 있던 아버지를 따라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평양 감영에서 옥소선이란 명기를 만나 사랑에 빠졌던 그는, 아버지를 따라 가느라 정인을 평양에 두고 왔습니다.

음식도 잘 먹지 않고 글도 읽지 않고...
이런 아들을 보는 어머니는 걱정이 태산입니다.
아버지는 그를 망월암으로 보내는데...

성세찬은 망월암에서 몰래 옥소선을 보러 탈출합니다.
앞으로 성세찬에게는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요?
부모님은 외아들이 사라진 것을 알게 될까요?

* 소설정획점고인(掃雪庭獲覘故人)은 ‘뜰에서 눈을 쓸며 마음이 멀어진 사람을 엿보아 얻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윤백남 (1888 ~ 1954)
소설가, 극작가 겸 연극영화인

충청남도 공주에서 1888년(고종 25) 태어난 윤백남의 본명은 교중(敎重)입니다.
1904년 일본으로 가 1910년 동경고등상업학교를 졸업하고, 1911년 보성전문 강사로 일했습니다.

1912년 극단 문수성(文秀星)을 조직하여 제1회 공연을 원각사(圓覺社)에서 가졌고, 1913년 《매일신보》 편집국장을 지냈습니다.
1916년 반도문예사(半島文藝社)를 설립하여 월간지 《예원(藝苑)》을 창간하였고, 극단 예성좌(藝星座)를 조직하여 초연을 단성사(團成社)에서 가졌습니다.

또한, 1917년 백남(白南)프로덕션을 창립하여 여러 편의 영화를 감독·제작했습니다.
1919년 한국 최초의 대중소설 [대도전(大盜傳)]을 발표했으며 민중극단을 조직하여 신극운동을 전개했습니다.

1922년 민중극단(民衆劇團)을 조직해 자신의 희곡 [등대지기][기연(奇緣)] [제야의 종소리] 등과 번안·번역극 등을 상연했고, 1923년 한국 최초의 극영화인 [월하(月下)의 맹서]의 각본과 감독을 맡았습니다.

대표작품은 [항우(項羽)] [난아일대기(蘭兒一代記)] [봉화(烽火)] [흑두건(黑頭巾)] [해조곡(海鳥曲)] [백련유전기(白蓮流轉記)] [미수(眉愁)] [낙조(落照)의 노래] [야화(野花)] [조선형정사(朝鮮刑政史)]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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