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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랑 時1

가슴을 울리는 한국문학 詩 018

일제강점기 시인, 김영랑이 1930년까지 창작한 초기작품! 시대별로 그의 시를 만나보고자 [김영랑時] 시리즈를 출간합니다. [김영랑時 1]에서는 1930년까지 창작한 13편의 초기작품을 담았습니다. 1917년 휘문의숙(徽文義塾)에 입학한 후부터 문학에 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한 김영랑은 홍사용(洪思容)·안석주(安碩柱)·박종화(朴鍾和) 등의 선배와 정지용(鄭芝溶)·이태준(李泰俊) 등의 후배, 동급반에 화백 이승만(李承萬)을 통해 문학적 안목을 키우게 되었습니다. 또한, 1920년 일본 아오야마학원[靑山學院] 중학부를 거쳐 같은 학원 영문학과에 진학한 후, 독립투사 박렬(朴烈), 시인 박용철(朴龍喆)과도 친교를 맺었습니다. 이런 친교를 바탕으로 창작한 초기 시, 「동백잎에 빛나는 마음」·「..
일제강점기 시인, 김영랑이 1930년까지 창작한 초기작품!

시대별로 그의 시를 만나보고자 [김영랑時] 시리즈를 출간합니다.
[김영랑時 1]에서는 1930년까지 창작한 13편의 초기작품을 담았습니다.

1917년 휘문의숙(徽文義塾)에 입학한 후부터 문학에 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한 김영랑은 홍사용(洪思容)·안석주(安碩柱)·박종화(朴鍾和) 등의 선배와 정지용(鄭芝溶)·이태준(李泰俊) 등의 후배, 동급반에 화백 이승만(李承萬)을 통해 문학적 안목을 키우게 되었습니다.

또한, 1920년 일본 아오야마학원[靑山學院] 중학부를 거쳐 같은 학원 영문학과에 진학한 후, 독립투사 박렬(朴烈), 시인 박용철(朴龍喆)과도 친교를 맺었습니다.

이런 친교를 바탕으로 창작한 초기 시, 「동백잎에 빛나는 마음」·「언덕에 바로 누워」·「모란이 피기까지는」과 전공을 살려 영시(英詩)를 번역한 시 등 13편의 초기 작품을 감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 초기 작품들에서는 ‘슬픔’이나 ‘눈물’의 용어가 수없이 반복되면서 그 비애의식이 ‘마음’의 내부로 향하는 정감의 극치를 이루고 있어 한국 순수시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김영랑 (1903 ~ 1950)
일제강점기 시인

1903년 전라남도 강진에서 출생하였고 본명은 김윤식(金允植)입니다.

1915년 강진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17년 휘문의숙(徽文義塾)에 입학한 후 3학년 때인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고향 강진에서 거사하려다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6개월간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습니다.

1920년에 일본으로 건너가 아오야마학원[靑山學院] 중학부를 거쳐 같은 학원 영문학과에 진학하였으나 1923년 관동대지진으로 인해 학업을 중단하고 귀국하였습니다.

광복 후 사회에 적극 참여하여 강진에서 우익운동을 주도하였고, 대한독립촉성회에 관여하여 강진대한청년회 단장을 지냈으며, 1949년에는 공보처 출판국장을 지내다가, 1950년 9·28수복 당시 유탄에 맞아 사망하였습니다.

1930년 아호였던 ’영랑’의 이름으로 3월에 창간된 『시문학』에 시 「동백잎에 빛나는 마음」·「언덕에 바로 누워」 등 6편과 「사행소곡칠수(四行小曲七首)」를 발표하면서 본격화되었고, 이후 『문학』·『여성』·『문장』·『조광(朝光)』·『인문평론(人文評論)』·『백민(白民)』·『조선일보』 등에 80여편의 시와 역시(譯詩) 및 수필·평문(評文) 등을 발표하였습니다.

주요 저서로는 『영랑시집』 외에, 1949년 자선(自選)으로 중앙문화사에서 간행된 『영랑시선』이 있고, 1981년 문학세계사에서 그의 시와 산문을 모은 『모란이 피기까지는』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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