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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랑 時3

가슴을 울리는 한국문학 詩 020

일제강점기 시인, 김영랑이 1950년대까지 창작한 작품! 시대별로 그의 시를 만나보고자 [김영랑時] 시리즈를 출간합니다. [김영랑時 3]에서는 1934년부터 1950년대까지 창작한 18편의 작품을 담았습니다. 1940년을 전후하여 민족항일기 말기에 발표된 「거문고」·「독(毒)을 차고」·「묘비명(墓碑銘)」 등 일련의 후기시에서는 인생에 대한 깊은 회의와 ‘죽음’의 의식이 나타나 있습니다. 김영랑은 광복 후 은거생활에서 벗어나 사회에 적극 참여하여 강진에서 우익운동을 주도하였고, 대한독립촉성회에 관여하여 강진대한청년회 단장을 지냈으며, 1949년에는 공보처 출판국장을 지냈습니다. 평소 음악에 대한 조예가 깊어 국악이나 서양 명곡을 즐겨 들었고, 축구·테니스 등 운동에도 능하여 비교적 여유..
일제강점기 시인, 김영랑이 1950년대까지 창작한 작품!

시대별로 그의 시를 만나보고자 [김영랑時] 시리즈를 출간합니다.
[김영랑時 3]에서는 1934년부터 1950년대까지 창작한 18편의 작품을 담았습니다.

1940년을 전후하여 민족항일기 말기에 발표된 「거문고」·「독(毒)을 차고」·「묘비명(墓碑銘)」 등 일련의 후기시에서는 인생에 대한 깊은 회의와 ‘죽음’의 의식이 나타나 있습니다.

김영랑은 광복 후 은거생활에서 벗어나 사회에 적극 참여하여 강진에서 우익운동을 주도하였고, 대한독립촉성회에 관여하여 강진대한청년회 단장을 지냈으며, 1949년에는 공보처 출판국장을 지냈습니다.

평소 음악에 대한 조예가 깊어 국악이나 서양 명곡을 즐겨 들었고, 축구·테니스 등 운동에도 능하여 비교적 여유있는 삶을 영위하다 1950년에 사망한 김영랑 시인이 창작했던 18편의 작품을 감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김영랑 (1903 ~ 1950)
일제강점기 시인

1903년 전라남도 강진에서 출생하였고 본명은 김윤식(金允植)입니다.

1915년 강진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17년 휘문의숙(徽文義塾)에 입학한 후 3학년 때인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고향 강진에서 거사하려다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6개월간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습니다.

1920년에 일본으로 건너가 아오야마학원[靑山學院] 중학부를 거쳐 같은 학원 영문학과에 진학하였으나 1923년 관동대지진으로 인해 학업을 중단하고 귀국하였습니다.

광복 후 사회에 적극 참여하여 강진에서 우익운동을 주도하였고, 대한독립촉성회에 관여하여 강진대한청년회 단장을 지냈으며, 1949년에는 공보처 출판국장을 지내다가, 1950년 9·28수복 당시 유탄에 맞아 사망하였습니다.

1930년 아호였던 ’영랑’의 이름으로 3월에 창간된 『시문학』에 시 「동백잎에 빛나는 마음」·「언덕에 바로 누워」 등 6편과 「사행소곡칠수(四行小曲七首)」를 발표하면서 본격화되었고, 이후 『문학』·『여성』·『문장』·『조광(朝光)』·『인문평론(人文評論)』·『백민(白民)』·『조선일보』 등에 80여편의 시와 역시(譯詩) 및 수필·평문(評文) 등을 발표하였습니다.

주요 저서로는 『영랑시집』 외에, 1949년 자선(自選)으로 중앙문화사에서 간행된 『영랑시선』이 있고, 1981년 문학세계사에서 그의 시와 산문을 모은 『모란이 피기까지는』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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