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시인, 노자영이 1940년까지 창작한 후기시!
소녀적인 센티멘털리즘으로 일관하여 자기의 시에 ‘수필시(隨筆詩)’라는 특이한 명칭을 붙이기도 했던 노자영 작가의 시를 시대별로 만나보고자 [노자영 詩] 시리즈를 출간합니다.
[노자영詩 3]에서는 1930년대 후반부터 1940년까지 창작한 24편의 후기작품을 담았습니다.
노자영 시인은 1938년에 제3시집 《백공작(白孔雀)》을 간행하였고, 기자 생활을 청산한 후 ‘청조사(靑鳥社)’를 직접 경영하였으며 나긋나긋한 말씨를 주조로 삼은 애정시를 즐겨 썼고, 빈번하게 향토 정조를 끌어들였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세번째 시집에 발표된, [봄비] [진달래] [여름 밤] [가을 삼제(三題)] [눈 오는 저녁] [사랑의 애가(哀歌)]를 포함한 24편의 작품을 감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노자영 (1901 ~ 1940)
시인, 수필가
1901년 황해도 장연에서 출생하였고 호는 춘성(春城), 필명은 꿈길입니다.
평양 숭실중학교를 졸업하였고, 니혼대학(日本大學), 도쿄 제일외국어학교 영어과에서 수학하였습니다.
한성도서주식회사, 동아일보사, 조선일보사 등에서 기자생활을 했고, 청조사를 경영하며 《신인문학(新人文學)》을 주재하기도 하였으며 1937년부터 《조광(朝光)》지 편집을 맡았습니다.
1922년 《백조》 동인으로 가담하며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했고, 《처녀의 화환》(1924), [《내 혼이 불탈 때》(1928), 《백공작》(1938) 등의 시집과 《청춘의 광야》(1924), 《표박(漂泊)의 비탄》(1925), 《사랑의 불꽃 : 연애서간》(1931), 《나의 화환-문예미문서간집》(1939) 등의 문집, 그리고 《반항》(1923), 《무한애의 금상》(1925) 등의 소설집을 간행했습니다.
그의 시는 향토적 정조를 담기도 했으나, 청춘기의 감상이나 고독감을 영탄조로 표현한 것이 많아서 미문(美文)에 불과하다고 평가되기도 했지만, 1920년대에 청춘기의 정서를 표현할 수 있는 작문방법을 보여주었으며, 1940년 사망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