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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혜석 현숙

감동의 한국문학단편시리즈 337

현숙이라는 여자와 두 남자의 여관방 이야기! 현숙은 A상회를 3일 만에 그만 두고, 카페에 여급이 되었습니다. 또한, 그녀는 유명한 양화가 K선생 집 모델로 매일 출입하고 있습니다. 현숙은 지금 L이라는 청년이 사는 방과 노시인이 사는 방 사이에 있는 여관방에 살고 있습니다. 그녀는 빨리 돈을 모아 상점을 열고 싶어합니다. 과연 현숙은 이 모든 남자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살고 있을까요? 그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봐야겠습니다. 이 작품은 1936년 [삼천리(三千里)]에 발표되었습니다.
현숙이라는 여자와 두 남자의 여관방 이야기!

현숙은 A상회를 3일 만에 그만 두고, 카페에 여급이 되었습니다.
또한, 그녀는 유명한 양화가 K선생 집 모델로 매일 출입하고 있습니다.

현숙은 지금 L이라는 청년이 사는 방과 노시인이 사는 방 사이에 있는 여관방에 살고 있습니다.
그녀는 빨리 돈을 모아 상점을 열고 싶어합니다.

과연 현숙은 이 모든 남자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살고 있을까요?
그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봐야겠습니다.

이 작품은 1936년 [삼천리(三千里)]에 발표되었습니다.
나혜석(1896~1948)
인형이 되기를 거부한 영원한 신여성

나혜석은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이자 작가였으며 근대적 여권론을 펼친 운동가였습니다.
일본 도쿄에 있는 사립여자미술학교에서 유화를 공부했고, 여자유학생 학우회 기관지인 [여자계] 발행에 주도적으로 참여했으며 조혼을 강요하는 아버지에 맞서 여성도 인간임을 주장하는 단편소설 "경희"(1918)를 발표했습니다.

1918년 귀국하여 1919년 3.1운동에 여성들의 참여를 조직하는 활동을 하다가 5개월 정도 옥고를 치렀고, 1921년에는 서울에서 개인전시회를 가졌습니다.

자신의 임신, 출산, 육아 경험을 솔직하게 토로하면서 ‘아이는 엄마의 살점을 떼어가는 악마’ 라고 규정한 "어머니 된 감상기"(1922)는 여성 고유의 경험을 처음으로 공론화시켜 사회적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또한, 자신의 연애, 결혼, 이혼에 이르기까지의 과정과 심리를 솔직하게 털어놓고 식민지 조선 사회의 가부장제가 가지는 모순을 비판한 글 "이혼고백장"(1934)과 "신생활에 들면서"(1935)을 발표하여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습니다.

일제 말기에는 수덕사에도 있고, 양로원에도 있었으나 매어 있기를 싫어하고 새로운 것을 찾아 길 위에 서는 것을 좋아했던 나혜석은 해방 후의 어느 겨울날 행려 병자로 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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