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기차를 못 타 놀림 받던 박 노인의 비극!
농민문학을 하고자 나는 서울에서 떨어진 K역에서 십리쯤 더 들어간 ‘궁말’이란 농촌에 들어가 살게 되었습니다.
그 곳에는 박 노인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모두가 타본 기차를 못 탄다는 놀림을 받았습니다.
그 때마다 박 노인은 기차를 못 타는 것이 아니라 안 타는 것이라고 노발대발하는 것이었습니다.
과연 박 노인에게는 어떤 속사정이 있는 것일까요?
박 노인을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듣고 사람들이 그를 놀리면 내가 막아주곤 했습니다.
이제 일제강점기, 박 노인이 겪은 비극적인 기차 이야기를 들어봐야겠습니다.
* 이 작품은 1959년에 발표되었습니다.
이무영 (1908 – 1960)
소설가
이무영의 본명은 이갑용(李甲龍)으로 1908년 충청북도에서 태어나 사립 용명(龍明)학교, 휘문고등보통학교, 일본 세이조(成城)중학교를 다녔으나 중도에 학업을 포기했습니다.
1926년 소설, [의지할 곳 없는 청춘]을 발표하며 등단한 후, 교사, 동아일보 기자로 일하다가 1939년 시흥에 정착해 농민소설인 [농민], [흙의 노예] 등을 집필했습니다.
대표작은 귀농을 주제로 한 [제1과 제1장]이 있으며 구인회의 발족 멤버였습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말기 일간신문에 친일 논설을 발표하는 등, 친일파로 활동했습니다.
1942년 조선총독부의 관변 단체인 조선문인협회의 소설·희곡회 상임 간사를 맡았고, 1943년까지 일본어 소설 [청기와집]을 연재했으며, 해방 후에는 친일파 청산을 폄훼하거나, 친일파를 시대의 희생양으로 묘사한 다수의 글을 남겼습니다.
이무영은 1960년 뇌일혈로 숨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