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개구리라는 별명을 가진 남자가 겪은 죽음의 공포!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아버지랑 살아가던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 아버지 마저 사고로 잃고 어린 나이에 혼자 머슴살이를 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던 그가 우연한 기회에 과부와 혼인하여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왜 ‘청개구리’라는 별명을 갖게 된 것일까요?
그가 이루려던 것과 그것을 막는 무언가…
지금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그가 어떤 삶을 살았고 또 그에게 어떤 미래가 펼쳐지는지 알아봐야겠습니다.
* 이 작품은 1940년, [농토]에 발표되었습니다.
이무영 (1908 – 1960)
소설가
이무영의 본명은 이갑용(李甲龍)으로 1908년 충청북도에서 태어나 사립 용명(龍明)학교, 휘문고등보통학교, 일본 세이조(成城)중학교를 다녔으나 중도에 학업을 포기했습니다.
1926년 소설, [의지할 곳 없는 청춘]을 발표하며 등단한 후, 교사, 동아일보 기자로 일하다가 1939년 시흥에 정착해 농민소설인 [농민], [흙의 노예] 등을 집필했습니다.
대표작은 귀농을 주제로 한 [제1과 제1장]이 있으며 구인회의 발족 멤버였습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말기 일간신문에 친일 논설을 발표하는 등, 친일파로 활동했습니다.
1942년 조선총독부의 관변 단체인 조선문인협회의 소설·희곡회 상임 간사를 맡았고, 1943년까지 일본어 소설 [청기와집]을 연재했으며, 해방 후에는 친일파 청산을 폄훼하거나, 친일파를 시대의 희생양으로 묘사한 다수의 글을 남겼습니다.
이무영은 1960년 뇌일혈로 숨졌습니다.